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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충격을 받고 무감각해지는 시기다.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부인, 분노가 나타난다. 혹은 모든 감각이 멍해져서 넋을 놓고 지내기도 한다. 예정되어 있던 것이라면 그냥 지나가기도 한다.
둘째,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싶고 되찾고 싶어서 찾아 헤매는 단계다. 그 사람과 친분이 있던 사람을 찾거나,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밤을 새우기도 한다. 좌절감, 분노, 슬픔을 느낀다.
셋째,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우울, 절망감을 느끼는 단계다. 우울, 불면, 식욕저하를 겪을 수 있다.
넷째, 자신의 생활을 회복하면서 자신을 추스르는 단계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을 떠올리면 슬프지만 함께 있었던 기쁨도 느낄 수 있는 통합된 감정이다.
그러나 6개월, 1년이 지나도 회복하지 못하고 상실의 고통과 우울감이 강하고 심해지는 경우 ‘우울장애’로 볼 수 있다. 최삼욱 원장(진심 정신건강의학과)은 “기간도 중요하지만 평소 그 사람의 자율성, 회복력, 정서적 성숙도, 특별한 상황 등이 영향을 미쳐서 과도한 양상으로 나타나면 치료의 대상이 된다”고 설명한다.
특히 아래와 같은 증상을 보이면 우울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관련이 없는 죄책감
② 같이 죽어야 한다는 자살에 대한 생각이 심할 때
③ 스스로의 무가치함에 대한 몰두
④ 정신적 활동과 행동이 심하게 느려질 때
⑤ 일상생활 자체가 어려울 때
⑥ 죽은 사람의 환각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는 환청이 있을 때
이런 경우 ‘지속되는 애도’ 혹은 ‘병적인 애도’라고 보며, ‘우울장애’로 진단내릴 수 있다.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능력과 능률이 떨어지고,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상태가 되면 치료가 요구된다.
상실로 인한 우울장애의 특징을 살펴보면, 자신에 대한 ‘비난’과 ‘처벌’이다. 슬픔에 빠져 자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애도를 유난히도 못할까? 그 사랑이 유난히 깊어서인지, 떠나간 사랑이 진실할수록 못 잊을까?
그러나 김혜남(정신분석 전문의)의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를 보면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잉꼬부부들이 사별을 하면, 다른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금방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애도를 잘 하고 못하는 것은 그 사랑의 깊이나 진실함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한다.
서로 사랑하며 살았던 부부보다 미워하며 살았던 부부가 애도 반응이 더욱 극심한 경우가 있다. 사이가 나쁠수록 더 심하게 찾아온다.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거야’라는 죄책감 때문이다. 상대에 대한 미안함과 과거의 후회가 밀려와, 극심한 후유증을 겪는 탓이다.
그러나 죽음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누군가도 죽음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아래는 정 박사의 글 일부다.
“죽을 만큼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호하려면 자기는 집에서 눈물 한 방울 보이면 안 된다고 믿고 꿋꿋이 버텨온 아이. 상담 중에 그 아이가 단원고 교복을 입은 일베 사진과 글에 대해 얘기하다 '선생님, 서러워요. 왜 이렇게 조롱을 받아야 하나요'라며 처음으로 펑펑 울었다. 감정이 나와야 진짜 치유가 시작되는데, 그 날 이후 아이는 자기 속 감정들을 아기가 첫 걸음마를 떼듯 어렵게 꺼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존재의 상실에서 오는 슬픔을 가슴으로 묵혀내기만 하면, 몸과 마음의 상처가 깊어진다. “감정이 나와야 진짜 치유가 시작된다”는 정 박사의 말처럼, 애도에는 감정의 표출이 필요하다.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혹은 절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울음을 참아서는 안 된다. 눈물로 슬픔을 씻어내고, 슬픔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한다.
최삼욱 원장은 “감정을 억누르는 회피 반응은 더욱 증상을 오래 가게 한다”고 설명한다. 감정을 표현해야 아픔을 보다 빨리 극복할 수 있다. 억지로 참지 말고 슬픔을 이야기하고 나누다 보면, 인생이 슬픔과 기쁨이 함께 존재하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조상들이 곡을 하고 꺼이꺼이 하고 우는 것 역시 일종의 리추얼(ritual, 의식)이다.
셋째, 상실한 대상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회상하라.
맹정현 정신분석학 박사의 <멜랑꼴리의 검은 마술>에 따르면, 잊으려고 노력하면 오히려 잊히지 않는다. 그 대상이 리비도(욕망)를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대상을 기억하고 회상해야 한다. 대상에 투자되는 리비도의 양을 미리 앞질러서 고갈시켜 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인이 군대에 가 우울증에 빠진 한 여성이 분석가를 찾아왔다고 한다. 분석가는 여성에게 이야기를 시킨다. 그녀에게 계속해서 기억하게 하고, 계속해서 연인에 대해 이야기하게 한다.
그러면 그녀는 연인이 떠났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게 된다. 바닥이 나 버리는 것이다. 당연히 기억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대상으로부터 리비도를 떼어 내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다. 잊기 위한 애도 작업으로 볼 수 있다.
넷째,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라.
최삼욱 원장은 “상실을 겪은 후 혼자 고립되지 말라”고 조언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더라도 가족, 친구 또는 심지어 이웃이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다.
점심을 같이 먹거나 커피를 마시는 모임을 만들거나, 사별 등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과 모임을 가져도 좋다. 밖에 나가기 힘들다면, 전화나 이메일로 매일 누군가와 연락하면서 외로움을 달래면 좋다.
다섯째, 글을 써라.
하버드의대(HMS) 산하 헬스비트(Health Beat, HHP)에 따르면, 글쓰기를 통해 깊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기분과 건강뿐 아니라 면역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한다. 최삼욱 원장 역시 “감정 일기를 쓰라”고 조언한다.
매일 하루 15~30분 동안 글쓰기를 하면 된다. 글쓰기가 계속 도움이 된다고 느껴지면, 일주일, 한 달씩 기간을 늘려 글을 쓰면 된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왜 그렇게 느끼는지를 솔직히 적으면 된다. 문법이나 문장 구조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쓰면 된다. 감정을 글로 쓰면서 일종의 환기(ventilation)를 하는 셈이다.
여섯째, 두 번의 죽음이 있어야 한다.
장례식, 제사 등을 참여하는 일은 망자가 떠났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동시에 개인적인 슬픔으로 국한됐던 일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아픔을 공감하고 나누는 경험을 하면서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
일곱째, 회복의 기미가 보이면, 다른 사랑하는 대상을 만나면 좋다. 대리언 리더(Darian Leader)의 <우리는 왜 우울할까>에서 라깡은 애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로 ‘죽은 사람이 사랑했던 나를 포기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죽은 사람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그 사람이 소중했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보다 내가 그 사람의 소중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라깡은 애도란 ‘그 사람이 결여했던 나를 애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애도는 그 사람이 사랑했던 나를 놓아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은 자가 사랑했던 나를 놓아주고, 다른 사랑을 사랑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물론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을 만나는 건 어렵다.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그 사람에게 결핍된 무언가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찾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애도란 그 사람의 결핍을 채워 주기 위해서 동원되었던 나의 일부를 잘라내는 일이다. 그 사람에게 소중했던 나의 모습들을 지우고 일상을 시작하면서 애도를 완료할 수 있다.
도움말 : 최삼욱 원장(진심 정신건강의학과)
참고도서 : 맹정현 <멜랑꼴리의 검은 마술>
김혜남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대리언 리더 <우리는 왜 우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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